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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이야기

쓸데없는 실험실 - 커피 원두 분쇄 크기에 따른 드립커피의 맛

안녕하세요? 커피 볶는 바리스타 돌원숭이입니다. 오늘도 날씨가 꽤나 쌀쌀하네요. 그래도 설날도 다가오고 하는 걸 보니, 봄도 얼마 남지는 않은 거 같습니다. 희망이 보이네요..

목요일은 가게가 쉬는 날이라, 뭔가 시간때우고 놀 일이 없을까 하다가, 쓸데없는 실험실을 다시 열었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드립 할 때 원두를 어느 정도 크기로 갈아야 맛이 좋을까?'입니다.

가끔씩 원두를 사 가시는 고객님들 중에서, 드립 할 때 원두를 어느 정도 크기로 갈아야 하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으시더군요. 저도 예전에 커피를 공부할 때 몇 번 실험도 한 기억은 나는데, 정확한 결과는 생각이 나지 않더군요.( 역시 머리가 참 안 좋아요....) 그래서, 일단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공통 조건은

 1. 원두 : Pentree Original 각 15g

 2. Drip 방법 : Kalita(칼리타) 방식 ( 가장 보편적인 방법 )

 3. 온수 온도 : 80℃

 4. Drip 량 : 100㎖

 5. 분쇄 방식 : 기계 분쇄, Beans mill 600N사용

그리고 실험 변수는 

 1. 장비 분쇄도 기준 1 : 아주 고운 분쇄 ( Espresso 수준 )

 2. 장비 분쇄도 기준 4 : 중간 수준 분쇄 ( Drip 용 )

 3. 장비 분쇄도 기준 8 : 아주 굵은 분쇄 ( 거의 망치질? )

원구의 분쇄 상태는 다음 사진과 같습니다.

한눈으로 봐도 크기 차이가 보이시죠? 분쇄도 1은 거의 전체적으로 1㎜수준이고, 4는 1~2㎜, 8은 5㎜수준의 알갱이도 있습니다. (사진 찍는 실력이 거의 개발이라 초점이 왔다가 가셨네요.) 그리고, 사진에 보이는 노란색 종이조각 같은거는 이물질이 아닌 원두에서 니오는 체프(Chaff) 가루입니다.

이 원두를 드리퍼에 넣고 드립 전 뜸 들이기를 합니다. 

분쇄도 1은 물이 거의 빠져나가지 않을 정도로 오래 물을 머금네요. 8은 거의 뜸 들이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흘러내려버립니다. 4는 어느정도 뜸들이기가 가능항 수준으로 물을 머금고 있고요. 차이가 크게 나는군요. 

이제 드립이 끝난 커피입니다.

차이가 보이시나요? 색깔도 점점 옅어지지만, 더 큰 차이는 표면의 거품입니다. 곱게 분쇄가 되면 될수록 표면에 거품이 생기고 그 거품은 잘 꺼지지를 않고 오래갑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이 드립이 끝난 후 1시간 정도 지났는데, 아직 분쇄도 1의 커피는 거품이 남아있네요.

 

자! 이제 맛을 볼까요? 오늘도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맛은 뭐다? 아주 주관적인 겁니다. 제가 느끼는 맛과 다른 사람이 느끼는 맛이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거 말씀드리고 시작합니다.

먼저 가장 곱게 분쇄된 분쇄도 1번입니다. 일단 맛이 아주 다양하게 올라옵니다. 그러나, 그 맛이 너무 섞여서 구분이 잘 안 되는 상태입니다. 약간 뻑뻑하다는 느낌이 날 정도입니다. 그리고 뒷맛(Aftertaste)이 너무 강합니다. 혀에 약간의 가루 같은 게 묻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텁텁한 뒷맛이 입안에 남습니다. 

다음은 중간 정도로 분쇄된 분쇄도 4번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쓰는 분쇄도입니다. 이 커피의 맛은 흔히 아는 맛입니다. 산미는 8번에 비해 더 높지만, 다른 여러 가지 맛이 강하게 올라와서 그 산미가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산미뿐만 아니라 쓴맛과 단맛 등 여러 가지 맛이 어우러집니다. 그리고, 뒷맛도 강하게 남습니다. 입안이 깔끔한 걸 좋아하시는 분들은 약간 텁텁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일 굵게 분쇄된 분쇄도 8번 커피 처음에 산미가 강하게 올라옵니다. 그러나, 그 산미를 제외하면 맛이 좀 약합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이뒷맛이 거의 없습니다. 커피를 마시고 30초 정도만 지나면 입안이 깔끔합니다, 많이 가벼운 느낌의 커피입니다.



요약하면, 

1. 깔끔한 맛을 원하신다면 원두를 조금 굵게 갈아서 드립 하세요.

2. 뒷맛(Aftertaste)을 원하시면 좀 더 곱게 간 원두를 쓰세요.

3. 산미는 곱게 갈수록 진해지지만, 나머지 맛도 같이 진해지기 때문에 오히려 약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런 게 머리 아프시면 그냥 펜트리로 오셔서 바리스타에게 이야기하세요. 이러이러한 맛을 원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아! 그리고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 분쇄된 원두는 가능하면 1주일 이내에 드세요. 시간이 오래되면 될수록 쉽게 산화되어서 이상한 맛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