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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이야기

쓸데없는 실험실 - 라떼 한번에 만들기

안녕하세요? 커피 볶는 바리스타 돌원숭이입니다. 이제는 가을이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왔네요. 가게 앞의 은행나무도 가을 옷을 갈아입고 있네요. 아직 조금 덜 입기는 했지만...

 

오늘도 돌원숭이는 먼 산을 쳐다보면서 하염없이 생각에 잠겼다가, 갑자기 기발한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습니다. ( 겁난다....)

항상 라떼를 만들 때면 에스프레소 샷을 내리고, 여기에 뜨거운 스팀 우유나, 차가운 우유를 섞는 2단계의 작업을 거칩니다. 그럼, 만약에 뜨거운 우유에다가 바오 커피 샷을 내리면 한 번에 쉽게 끝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갑자기? 왜? 많이 심심해? )

 

일단 생각이 났으니, 그다음은 뭐다? 실험해 봐야죠...

준비물은 간단합니다. 우유 100g, 원두 10g, 스팀 피쳐, 에어로 프레스....

 

제일 먼저 우유 100g을 스팀 피쳐에 담고 인덕션 레지를 이용해서 끓입니다.

 

우유가 끓기 시작하면 분쇄된 원두 10g을 넣고 잘 저어줍니다. 

그러면 우유와 커피가 마녀의 스프 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못했습니다.  여기서부터 , 아!  이건 망했구나!라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었습니다.

 

도저히 그냥은 필터링이 되지 않을거 같아서 에어로프레스를 이용해서 가압 추출을 했습니다.

평상시 에어로 프레스 추출 압력보다 거의 3배는 더 힘을 줘야 추출이 되더군요. 아마도 우유를 가열하면서 변성된 우유 단백질이 필터를 막아서 발생한 문제 같습니다. 예상했어야 했는데...... 이때 2차로 아! 망했구나 했습니다.

 

추출된 라떼입니다.

일단 외형은 라떼 같습니다. 맛을 보겠습니다. ( 진짜 이 순간, 머리는 맛을 보려고 하는데, 가슴은 계속 거부를 했습니다. 이거 먹으면 죽는다 라면서. 머리보다는 가슴이 시키는 대로 했어야 합니다. )

 

맛을 한마디로 평가하면 

' 지옥에서 악마가  인간들 벌줄 때 마시는 라떼 '입니다.

라떼의 맛은 야간 납니다만, 그것보다 심하게 오는 맛이 엄청 떫고, 쓰고, 아린 맛입니다. 향은 커피 향보다는 찌든 담배 향에 가깝고요.

쉽게 예를 들면, 대학 다닐 때 밤새워 술 마시다가, 아침에 깨서 목마르다고 반쯤 남은 맥주병을 들고 마셨는데, 알고 보니 재떨이로 쓰던 맥주병이었을 때의 맥주 맛 같습니다. (어릴 때 겪었던 트라우마가....)

아마도 원인은 우유에 들어있는 유지방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에스프레소나 드립의 경우 물로 추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용성 성분이 추출되지만, 이번 실험의 경우 우유에 있던 유지방 때문에 지용성 성분이 같이 추출되어서 그런 맛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역시 천년 가까운 커피의 역사에서, 라떼를 우유에 직접 끓이지 않는 이유는 있었습니다. 조상의 지혜를 오늘에 적용해야 하는데, 저는 왜 이럴까요?

이처럼 쓸데없는 실험실은 진짜 쓸데없는 실험들만 합니다. 혹시나 궁금하시거나, 해보고 싶은 실험 중에 장비가 없어서, 원두가 없어서 하기 힘든 실험이 있니요? 펜트리로 연락 주세요. 뭐든지 해드립니다.....